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셨던 ‘가엾은 마음’은 단순한 감정, 느낌과는 매우 다른 차원의 심층적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함께 당하는 것(cum+patire)’, 곧 상대의 고통을 동일하게 겪어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에 함께하시며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마음으로 구원을 이룩하신 분이고, 이렇게 구원 역사의 정점을 완성하시는 것이 그분의 오심, 곧 대림과 성탄의 본질이었습니다.
_37-38쪽
하느님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과 같지 않고, ‘하느님은 하느님God is God’이시기에, 인간의 소름 끼치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은 하느님이시기에 그 불가해한 사랑이 가능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성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성큼성큼 가까이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의 현실로 믿고 온전히 기뻐하는 일입니다.
_55쪽
모든 고통은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엘리야도, 세례자 요한도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부당한 외압과 고난의 여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 역시 우리를 위한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같아지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고, 우리를 위해 죽음에까지 이르는 삶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불가역적 사랑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토록 우리를 사랑해서 함께하고자 하시는 분이, 이제 세상에 태어나시어 ‘우리와 함께(임마누엘)’ 지내시게 될 것입니다.
_100쪽
우리말로 “기다리는 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프로스데코메노스’로서 시제가 현재분사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시메온이 오래전부터 꾸준히 이때를 기다려 왔고 여전히 그러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의 기다림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현재에도 동일한 태도가 성실하게 지속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메온의 삶 자체는 의로움과 성실함으로 주님과의 만남을 기다려 온 여정이었고, 이러한 자세야말로 우리 신앙생활의 본질을 드러내 줍니다. 우리의 삶 전체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_205-206쪽